저는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악기소리나 초인종 벨소리 등 사람의 목소리를 제외하고 음이 있는 소리는 다 계이름으로 들렸습니다. 노래로 '도미미 미솔솔'이라고 노래를 불러주는 것과 같이 소리가 계이름 자체로 들립니다. 요즘 같이 콘텐츠가 많은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절대음감이라는 명칭이 있는 줄도 몰랐고 모든 사람이 원래 그런 줄 알고 살았습니다. 실용음악 입시를 공부하면서 모든 사람이 저와 같이 들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키가 다 '도레미파솔라시도'로 들리는 상대음으로 들리고 둘 다 들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요.
절대음감과 상대음감이란?
절대음감이라고 하면 어감때문에 '절대권력자'와 같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엄청난 천재같이 들리지만 사실 '절대평가', '상대평가'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명칭입니다.
즉, 절대음감은 '도'를 듣지 않아도, 키가 바뀌어도 고유의 계이름으로 들리고 상대음감은 '도'를 지정해 주면 그 '도'음을 기준으로 음의 거리를 듣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대음감이 더 신기합니다.
어떤 음감을 갖은 것이 더 유리할까?
클래식 연주자는 악보만 보고 연주를 하면 되기 때문에 어떤 음감을 갖고 있는지가 연주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 같지만 현악기, 관악기의 경우에는 절대음감이 있는 것이 조금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실용음악과의 경우 악보가 없이 음악을 듣고 옮기는 '카피'를 주로 하기 때문에 악기 없이 멜로디를 카피하기에는 절대음으로 듣는 것이 유리합니다. 하지만 코드를 카피하는 데 있어서는 상대음을 갖고 있는 것이 더 유리하죠. 저는 코드 구성음을 듣고 코드를 파악하는데 상대음감은 코드의 색과 어떤 키에서 '몇 도' 코드로 들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느 쪽이 더 유리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간혹 상대와 절대를 다 갖고 있는 부러운 친구들도 몇 명 보았습니다. 시창청음 시험시간에 저는 코드를 들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시험지에 멋진 그림까지 그려내면서 만점을 맞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절대음감의 불편한 점은 곡의 키를 바꿀 때 건반에 트렌스포즈 기능을 사용하면 바로 키를 바꿀 수 있는데 들리는 소리와 눈으로 보이는 건반의 소리가 다르니 몇 마디 못 가서 틀려버리게 됩니다. 또 저는 가야금을 배우고 있는데 가야금도 이조악기 중 하나이기 때문에 줄이름과 저에게 들리는 소리가 달라 많이 헷갈리게 됩니다.
장점은 절대음감이 컨텐츠 제작에서는 유리한 것 같습니다. 듣고 바로 따라 치는 콘텐츠가 인기가 많기 때문이죠.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인기도 많아질까요?
음악 전공자는 다 절대음감이 있을까?
- 클래식 전공자
저는 어려서부터 클래식 교육을 받은 전공자라면 이조악기(악보와 실제 들리는 음이 다른 악기)를 제외하면 다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학생 중 한예종에 다니는 학생에게 물어보니 절대음감을 갖고 있는 학생이 몇 안되고 절대와 상대가 둘 다 없는 학생들도 많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악기를 한다고 꼭 생기는 건 아닌가 봅니다.
- 실용음악 전공자
실용음악과에서는 카피의 능력이 필수이기 때문에 드럼, 미디 전공자를 제외한 악기전공자는 절대나 상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율로 봤을 때는 상대음감이 훨씬 많고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의 수는 한 30% 정도 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주로 피아노를 많이 다루는 피아노와 작곡전공입니다.
그렇다면 피아노를 어려서 배우면 절대음감이 있을까?
피아노는 음을 맞춰 연주하는게 아니라 딱 음이 정해져 있는 악기이기 때문인지 절대음감을 갖고 있는 사람의 많은 비율이 피아노 전공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피아노를 오래 배웠어도 다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피아노만 절대음으로 들리는 사람, 상대음감인 사람 등등 다양한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다른 악기는 다 절대음으로 들리고 보컬만 상대음으로 들립니다.
노력하면 음감을 가질 수 있을까?
음감이란 타고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노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일까요? 저는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어서 처음엔 그 차이를 실감하지 못했지만, 주변에 상대음감을 훈련으로 만들어낸 친구들을 보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절대음감을 가지려면 어릴 때부터의 환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도 만 6세 이전에 꾸준한 청음 훈련이 있었던 경우 절대음감으로 발달하는 확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7살 이전까지 음악을 많이 들은 것도 아니었고 접한 음악이라고는 동요밖에 없었네요.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겠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될 수는 없기에 이 능력을 가진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인이 된 후에는 음감을 기를 수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상대음감은 충분히 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 친구 중 한 명은 전혀 음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매일 음정을 외우고 따라 부르며, 반복적으로 간단한 멜로디를 듣고 쓰는 훈련을 하면서 몇 년에 걸쳐 점점 상대음감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멜로디 카피나 시창 시험을 무리 없이 해내고 있습니다.
음감을 훈련하고 싶으신 분들께는 다음과 같은 해보시면 어떨까요?
기준음을 정하고 따라 부르기: 예를 들어 '도'음을 매일 듣고 따라 부르며 그 음을 기준으로 삼는 연습을 합니다.
음정 간격 외우기: '도-미'는 장3도, '도-솔'은 완전 5도처럼 각 음정이 주는 느낌을 외우고 소리로 익히는 연습을 해보세요.
간단한 멜로디 듣고 따라 치기: 짧고 쉬운 멜로디를 듣고, 피아노나 사용하는 악기로 따라 쳐보며 익혀보세요.
어플 활용: 요즘은 스마트폰 앱이나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음감 훈련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으니, 매일 10분이라도 꾸준히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금씩 훈련을 지속하는 것이 진짜 실력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음악은 음감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표현력, 리듬감, 음악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악을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음악을 공부하는 데 있어 음감을 갖고 있는가 보다는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