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음악이 태어난 곳은 미국이었지만 전국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영국에서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1988년 런던에서 하우스 음악의 인기가 폭팔하였고 하우스의 인기와 레이브의 확산을 뺴놓고는 90년대 영국문화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음악, 패션, 공연 비주얼 아트 등 영국의 문화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우스 음악에 대한 평가
'디제이 문화'는 라이브 문화로부터 괄시를 당해왔던 것처럼 하우스 역시 조롱을 당했습니다. 음악성 없는 아이들이 값싼 전자장비로 만든 B급 댄스라고 비판 받았습니다. 일례로, 영국에서 초기 하우스 음악을 틀었던 디제이 재지 엠은 위세대의 디제이 그렉 제임스에게 '세상에! 이건 너무 못 만들었잖아. 그냥 역겨운 음악이네! 절대 뜨지 못할거야."라는 반응을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하우스를 꺼려했던 디제이들은 대부분 제임스 브라운 풍의 고전 훵크 소울, 그리고 재즈 등 희귀한 명곡을 틀고 즐기는 레어 그루브(Rare Groove)시대의 주역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평론가들 만큼이나 흑인 음악 역사에 전문가들이었으며 80년대의 신세대 취향보다는 70년대 고전미를 추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근본주의자들이 당연히 하우스 음악을 환영할리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디스코를 싫어하는 사람들 <LADS(League Against Disco Shit'>라는 하우스 반대하는 모임까지 만들었습니다. 이 갈등은 전통적인 소울, 훵크 시대와 신세대 흑인 음악의 갈등이었습니다.
하우스의 수난은 등장하자마자 백인들은 문론 흑인들에게서도 호불호가 확실히 갈렸던 힙합음악과 비슷하였습니다. 힙합음악도 음악을 조각내 재활용한다는 것이 야만적이라는 취급을 받았고 영국의 소울, 훵크의 순수주의자들도 처음엔 '가는한 흑인 애들이나 듣는 음악' 이라고 까지 칭하며 힙합음악을 깔보았습니다. 그런데 힙합도 하우스 음악에 경멸을 보낼 정도였습니다. 하우스 수난사의 가장 유명환 일화로 델리리움(Delirium) 파티는 행사 때 디제이 부스 주위로 새장 같은 철장을 설치한 적이 있었는데, 합합 팬들이 하우스가 나올때마다 병을 집어 던졌기 떄문입니다. 당시 하우스는 어딜가나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았습니다.
하우스의 선전
그나마 하우스가 선전한 곳은 북부 맨체스터(Manchester)로 디제이 마이크 피커링(Mike Pickering)이 하우스 주력의 파티인 누드
(Nude)를 개최해서 성공을 겨뒀습니다. 누드는 매주 금요일에 열렸으며 하시엔다에서 가장 잘나가는 파티였지만 여전히 사운드 문제가 여전했고 엄청난 반응도 없었으며 그 성공이 88년의 열풍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우스의 인기가 폭팔적으로 발전된 계기로 'Jack your Body'가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한 것이 결정적 계기로 꼽히기도 하지만 이 곡이 1위를 차지한 1987년만 해도 대부분은 그게 하우스인지도 모르고 좋아했습니다. 훗날 하우스 전문가가 되는 평론가 빌 브루스터 조차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난 솔직히 말해서 그 음악들이 하우스인지도 몰랐다, 나에게 그 음악은 그냥 일렉트로닉 음악이거나 아니면 일렉트로였다. 난 하우스가 나머지 일렉트로닉 음악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우스가 선전하게 된 더 직접적인 계기는 이비자의 클럽문화가 영국에 유행하면서, 엑스터시가 본격적으로 성행하면서 하우스가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폴 오큰폴드는 1994년 프랭크 브러튼과 대화를 하면서 "이비자와 엑스터시 이전까지 영국에서 하우스는 정말 인기가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비자
이비자는 지중해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스페인의 여러 섬들이 모여있는데 이를 '발레아릭 군도(Balearic Islands)'라고 부릅니다. 이곳은 낮에는 뜨거운 태양과 따듯한 바닷바람을 느낄 수 있고 저녁엔 샌 안토니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으며 밤에는 깨끗한 하늘로 수많은 별들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더해 관대한 원주민들의 성격으로 정치적 망명자들은 문론 성소수자들에게도 관대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들의 개방적이고 넓은 아량으로 전세계 보헤미안들, 특히 히피들이 이 섬으로 몰려와 마음껏 자유를 누렸습니댜.
이곳에서 알프레도가 암네지아 클럽에서 디제이를 맡았는데 초반에는 손님이 1명일 정도로 부진했으나 우연히 영업 시간이 끝나고 직원들이 매니저를 기다리고 있는데 직원한명이 알프레도에게 음악이나 틀어달라고 부탁을 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떄 음악을 쿠 클럽에서 놀다가 나온 손님 몇 명이 듣고 약 60명 정도가 모여 정오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이튿날 300명이 왔고 다음날에는 500명이 오더니 얼마지나지 않아 천명의 인원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 계기로 암네지아는 이비자 최고의 나이트 클럽으로 떠올라 '애프터 클럽' 이라는 특이한 영업형태를 탄생시켰습니다. 당시에는 새벽 늦게 문을 열어 정오까지 음악을 튼다는 것은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알프레도는 "그때부터 우리는 클럽 오픈 시간을 늦추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자정 12시에 문을 열어서 아침 9시에 문을 닫았다. 하지만 몇 주 지나지 않아 손님으로 꽉 차게 되었고 우리는 새벽3시까지는 문을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정오까지 영업을 했으며, 이것이 바로 이비자 섬에서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첫 번째 애프터 클럽이었다.
이렇게 하우스의 열풍이 시작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더 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 Back to the House (이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