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현 가야금 — 작곡가가 배워본 실전 악기 이해
저는 실용음악과 피아노 전공이지만 국악 작곡 작업을 많이 하면서 다양한 국악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악기는 악보와 음원을 참고하며 음역대와 주법을 익힐 수 있었지만, 12현 가야금은 예외였습니다. 피아노처럼 직관적인 음계가 아니고, 이동도법이라는 기보 방식도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직접 가야금 선생님께 배우기 시작했고 어느덧 1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성금연류 산조와 황병기 선생님의 침향무를 배우며 작곡을 위해 연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배우면서 느낀 12현 가야금의 특징과 작곡자로서 얻은 인사이트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가야금의 종류
1. 풍류가야금 — 가야금의 원형
오동나무를 파내어 만든 풍류가야금은 울림통이 크고 현 간격이 넓어 소리가 부드럽고 중후합니다. 느린 곡에서 깊은 울림이 아름답지만 빠른 패시지나 도약이 많은 음악에는 연주가 까다로워 현대에는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습니다.
2. 12현 산조 가야금 — 제가 배우고 있는 악기
산조가야금은 풍류가야금보다 약간 작고 현 간격이 좁아 빠른 템포와 다양한 주법을 소화할 수 있도록 개량된 악기입니다. 산조라는 독주곡 양식의 발전과 함께 등장했죠.
오른손으로는 손목을 사용해 현을 45도 각도로 뜯어 여운이 풍부한 음을 만들고, 왼손으로는 현을 눌러 농현, 전성, 퇴성 등 섬세한 표현을 구사합니다. 배우면서 느낀 건, 손끝의 예민한 감각과 힘 조절이 굉장히 중요한 악기라는 점입니다.
3. 18현, 25현 가야금 — 개량악기의 등장
공연장의 음량 요구에 맞춰 등장한 악기들로, 현이 늘어나 음역대가 넓어지고 폴리에스테르 현을 사용해 장력 유지가 용이합니다. 18현은 5음계 기반, 25현은 7음계 기반으로 조율되어 창작곡에서도 많이 쓰입니다. 다만 미묘한 농현 표현은 12현 가야금이 여전히 가장 섬세하다고 느꼈습니다.
4. 철가야금, 고·중·저음 가야금, 전자가야금
철가야금은 강한 울림을 위해 철현을 사용하며, 고·중·저음 가야금은 3중주 편성을 위해 음역을 나눈 개량형 악기입니다. 전자가야금은 증폭장치를 통해 전자음악에도 활용됩니다. 저도 실험적 창작에서는 언젠가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분야입니다.
12현 가야금의 기보법 — 작곡자가 처음 부딪히는 장벽
12현 산조 가야금 악보는 이동도법을 사용합니다. 쉽게 말해 피아노의 '도' 음이 가야금 악보에서는 '솔'로 표기됩니다. 즉, 실음보다 5도 위로 적혀있죠.
저처럼 절대음감인 경우 처음엔 굉장히 헷갈렸습니다. 지금은 악보를 읽을 때 5도를 자동으로 계산하는 게 습관처럼 되었지만, 여전히 가야금 선생님과 소통할 때면 잠시 머릿속으로 변환 과정을 거칩니다.
작곡자로서 바라본 12현 가야금의 특징
조율과 조성
기본 조율은 C장조 기반이지만 산조에서는 안족을 내려 약간 낮춰 연주하기도 합니다. C키, Am키, Cm키 등이 비교적 자연스럽고 눌러서 음을 만들어가는 특성상 국악의 오음계 멜로디가 잘 어울립니다.
멜로디 구성 — 도약과 흐름
클래식이나 실용음악처럼 자유로운 도약보다는 12현 가야금에서는 옥타브, 4도, 인접 현 간 이동이 자연스럽습니다. 빠른 패시지에서는 동일 음 반복이나 음형 반복으로 긴장감을 만들어갑니다. 작곡할 때는 이를 의식하며 멜로디를 구성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화성과 음향적 특징
피아노는 누르면 곧장 음이 나오는 악기지만, 가야금은 음을 눌러 음고를 조정하는 미세한 감각이 중요합니다. 농현과 눌러내기를 통해 수많은 미분음을 만들어내며, 이 미묘한 떨림이 가야금 특유의 감성을 만들어줍니다. 화성 중심 악기라기보다는 선율과 음색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악기라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배우며 느낀 점들
- 12현 가야금은 '쉽게 쓰기 어려운 악기'였다
- 기보법을 익히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 손끝 감각이 예민할수록 표현력이 훨씬 살아난다
- 한번 연주해보니 작곡할 때 음역, 도약, 템포 설계가 수월해졌다
- 의외로 소리의 파워가 꽤 크고 에너지감이 있다
작곡자를 위한 한 마디
피아노 전공자로 시작했지만 국악 작곡을 할수록 가야금이 얼마나 예민하고 섬세한 악기인지 깨닫고 있습니다. 단순히 음을 적는 것이 아니라, 손끝의 떨림과 숨결이 소리를 만들어내는 악기라는 걸 알게 되면 작곡 방향도 자연히 달라집니다.
혹시 저처럼 가야금 작곡에 도전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짧게라도 직접 악기를 배워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책이나 이론으로 보는 것보다 현장에서 느끼는 것이 훨씬 많은 걸 알려주더라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경험들이 누군가에겐 작은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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